Book Reviews

박완서, <그 남자네 집>

도미니크앙셀 분당점 2022. 5. 9. 16:18

<대학신문>에서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 다큐멘터리를 한창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1편 "만인의 작가, 글에 살다"의 출연진 중 한 명인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을 인터뷰하는 날 난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살면서 가장 잠이 많을 시기인 초중고 12년 중에 하루도 지각하지 않은 내가 하필 그 날은 오전 10시를 훨씬 넘은 시각까지 단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시계를 잘못 본 줄 알고 침대 협탁 위의 디지털 시계에서 시선을 돌려 여전히 충전기가 꽂힌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가장 먼저 이미 경기도에서 서울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을 선배들한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결국 선배들은 인터뷰하기 전까지 얼마 간의 여유가 있어 광화문인지 을지로인지 헛갈리는 어딘가의 지하 상가에서 급하게 스마트폰 삼각대를 구매해서 굉장히 비전문적으로 비치는 장비들로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을 인터뷰했다. 왜냐하면 신문사의 카메라며 삼각대며 모두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민철 논설위원과의 인터뷰는 무사히 끝났고, 그 후 맛있는 점심까지 사 주셨다고 한다. 나중에 1편을 컷편집하기 위해 그의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는데, 과연 박완서와 꽃을 주제로 책까지 엮어낸 이답게 양질의 답변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팀(혹은 나)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그 남자네 집>의 한 구절을 낭송했을 때다 (https://youtu.be/-3LXrgxW4SA?t=1002). 아마도 1편 출연진들에게 던진 공통 질문인 듯한데, 본인이 가장 추천하는 박완서 작품을 물었을 때, 논설위원은 <그 남자네 집>을 꼽으셨다. 박완서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박완서란 이런 작가구나, 라고 알게 되는 그런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당시에는 일도 많고 따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잔뜩 쌓여 있었기에 미처 <그 남자네 집>을 읽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 년 그리고 반이 조금 안 된 올해 4월 마지막 주에 마침내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장편 소설을 손에 들었다.

 

완독하고 나서도 한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은, 왜 제목을 "그 남자네 집"으로 지었을까? 박완서의 열렬한 독자라면 그녀의 작품 세계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주요 모티프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 전쟁 중의 서울과 전후의 서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남자네 집>의 화자가 미군 PX에서 근무를 마치고 명동 번화가에서 현보 씨와 노니는 대목에서는 절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나목>이 생각났고, 화자의 엄마가 결혼을 앞두고 사위에게 '우리 양반들은~'이라고 말하며 꼬투리를 잡는 대목에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생각났다. 결국 <그 남자네 집>도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여러 기회와 매체를 통해 풀어 놓았던 한국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나 싶은 단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분명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도 자기만의 몫이 깃들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은 여전했다. 예를 들어, <나목>이 작가가 접한 화가 박수근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연작은 세상 물정 모르던 당돌한 사대부집 꼬마 아가씨 박완서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통과해 억척스러운 어른이 돼 가는 일종의 성장기다. 그렇다면 작가의 마지막 소설은 한국 전쟁 전후 - 라기에는 주로 50년대 중반에서 후반을 주로 다루고 있다 - 이라는 같은 시간적 배경의 캔버스에 어떤 풍의 그림을 그릴까. 스스로 고민해서 내린 답은 결국 '낭만'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한 편의 줄거리로 요약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읽는 재미만을 좇는 독자라면 한 장씩 따로 탐독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왜냐하면 각 장이 일종의 단편처럼 기능해서 따로 떼 놓고 읽어도 충분히 탐미할 만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편이라는 장르를 고려하면 각 장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왜 굳이 그러한 위치에 배치됐는지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앞서 제기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설 전반의 유기적인 구조를 재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제시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비선형적 전개 방식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속 문장마다 누군가 생명력을 불어넣기라도 한 듯 울긋불긋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의 화자가 시집 가서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나 식사 준비 과정에 대해 서술한 바를 읽고 있노라면 실제로 그녀의 시어머니가 조밀한 부엌에서 냄비에 퍼 담고 있는 각종 재료의 향과 맛이 느껴질 듯하다. 그만큼 작가는 화자의 시집살이부터 시작해 동대문 시장에서 장 본 내역이니 나중에 남편을 사별하고 한참 지나서 우연히 돈암동 그 남자네 집을 발견하고는 그 안에 흐드러지게 핀 보리수 나무 꽃에 대해 무척이나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녀의 문장이 읽기 쉽지는 않다. <대학신문> 다큐멘터리 3편에서 권영민 선생님이 지적하셨듯 박완서는 미문가는 아니지만, 문장의 호흡이라든지 단어 선택이라든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구사하며 문자 그대로 '생생한 말맛'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나는 해당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내게는 생경하지만 50년대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했을 그 남루한 풍경과 생활 풍습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 시대의 것은 그 시대의 말로 담아야 시간의 경과로 인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완전한 형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읽은 조앤 디디온의 에세이에 "어느 장소는 그곳을 가장 치열하게 기억하는 이의 것이다"라는 진리 아닌 명제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50년대부터 70년대의 서울은 박완서의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남자네 집>은 화자가 돈암동으로 새로 이사간 후배의 집을 방문하며 시작된다. 흔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박완서 소설의 독자들은 화자를 작가와 일치시키지만, 작가와 화자는 엄연히 분리된 인격이므로 화자가 소설에서 언급하는 후배가 문단 후배인지, 고교 후배인지, 대학 후배인지는 알 수 없을 노릇이다. 아, 그런데 아마 대학 후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남자네 집>의 화자도 서울대학에 입학한 해에 전쟁이 발발해 휴학했다가 '엄마의 판단에 의해 복학을 포기했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는 대학교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 후배가 존재할 리 없다. 여담이지만, 바로 이러한 소소한 세부 사항으로부터 박완서 문학에서 화자와 작가가 필연적으로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근거를 얻고는 한다. 작가 스스로 자전 소설이라고 밝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화자가 자기 의지로 대학을 그만뒀다. 본론으로 돌아가 2000년대의 화자는 그것을 계기로 돈암동에 살던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졸지에 자신의 첫사랑인 '그 남자'네 집까지 찾게 된다. 그 남자의 이름은 현보인데, 이것은 한참 후에 화자가 결혼하고 주부가 돼서야 밝혀진다 - 아니면 적어도 첫 몇 십쪽에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첫사랑의 간질거리는 설렘이 지나 일탈의 성격이 더 강해진 만남을 이어갈 때에서야 비로소 '그 남자'를 호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 아닐치 추측해 본다. 하여튼 그 남자는 놀랍게도 화자의 먼 친척이었고, 따라서 친지들 중 아무도 그들이 전쟁통 속에 '사랑'을 나눴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랑'이라고 해 봐야 육체적 관계 한 번 없이 굉장히 플라토닉했지만. 하지만 그들이 '플라토닉'에 만족하자는 무언의 합의를 맺은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남자는 허리가 굽을대로 굽어버린 노모와 다른 가족들에게 '용돈을 타' 생활하고 있었고, 여자는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어 버린 탓에 본인이 다섯 식구의 가장 노릇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혹시 모를 생명의 탄생을 저지하고자 그들은 절반짜리 사랑을 나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화자는 결국 경제적 안정성을 원했기에 다소 홧김에 전 PX 동료였던 은행원 전민호와 결혼한다. 화자의 시집살이를 묘사한 대목이 상당히 재미있다. 시집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시모에게 구박을 당한 것도, 남편에게 여자로서 외면받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해당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함의가 시집 식구들에게는 지나치게 부당해 보이기는 한다. 그럼에도 사시사철 외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정성스레 음식 하느라 정신 없는 시어머니와 그 특별한 음식들의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직 신혼인 부인에게 주급을 타 쓰기를 권유하는 남편에 '몰락한 양반집 규수이자 숙명고녀를 졸업해 서울 대학까지 갔던' 화자가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에게도 싫은 소리 들은 적 없지만, 오히려 생활의 안정성이 너무나 견고해서 화자의 턱 밑까지 숨을 조여오던 일상의 단조로움에 화자는 틈만 나면 "안따노 오까상"이라고 일본 말까지 써 가며 남편에게 시어머니 흉을 보고, 급기야 그 남자와 '플라토닉한' 불륜까지 저지른다. 이번에도 육체적인 관계는 전무한, 누구에게나 '오랜 친구 혹은 친척이 너무 반가워서 그만'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 정도로 건전한 만남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쟁 중이었던, 그리고 아직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던 시절과는 달리 주부가 된 화자는 그 남자와의 성적 쾌락까지 노리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들이 그 남자네 가문의 선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당일 남자가 뇌 수술을 받고 향후 '현보'로 전락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화자의 첫 아이는 친부를 가려내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줄줄이 아이를 네 명이나 낳은 화자는 아이 키우는 데 재미가 들려서인지, 아니면 그저 여섯 식구 살림하기 바빠서인지 (후자인 것 같지만) 한동안 낭만에 대해서는 잊고 지낸다. 화자 대신 그 시기에 낭만을 품은 이가 있으니, 바로 춘희다. 춘희는 화자가 전민호와 결혼할 즈음 자신의 미군 PX 포지션을 넘겨 줬던 전민호네 옆집 식구의 장녀로, 전쟁이 끝나고 미군 PX가 의정부로 이사간 다음에도 계속 거기서 일하며 - 명목상,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우려했던대로 양갈보 짓을 통해 - 밑으로 난 다섯 동생들과 과부가 된 어머니를 먹여 살렸다. 참, 춘희의 성격이 처음에는 수줍은 여고생에서 나중에는 푸에르토리칸 졸병이랑 준비 없이 성교를 했다가 대담하게 낙태 수술을 받고 끝에는 어느 필리피노 콜포(corp)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 가 가족 전체를 미국 이민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로 정착시킬 정도로 악착스럽게 변하는 과정 또한 참 흥미롭다. 또한,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민을 떠나기 전 화자를 찾아가 자신의 "드림"에 대해, 즉 마음 속 낭만에 대해 늘여놓는 대목에서는 마음 한 켠이 저려 왔다. 잠시 그녀의 대사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다: "미국엔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대. 저만 똑똑하고 건강하면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네,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나에게 용기를 주어. 언니, 난 드림이 좋아. 언니도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고 축복해줘. 꼭 드림을 이루고 말 테니까" (326~327). 춘희는 그녀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듯하다.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면 여든은 거뜬히 넘었을 할머니가 됐을 테니 '춘희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어지지만. 그녀의 가족은 보란 듯이 성공적으로 미국에 정착했고, 끊임없는 낙태 수술로 인해 불임의 몸이 된 춘희를 제외하고는 다섯 동생들은 모두 줄줄이 자식을 낳아 이제는 엄연히 영어가 모국어인 3세대까지 손주를 봤다. 그중 춘희의 막내 여동생은 언니 이름을 따 첫 딸 이름을 '카멜리'라고 지었는데, 장학금까지 받으며 명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인 카멜리는 "한국전쟁 중에 섹스 산업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나" (366)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며 "가랑이 벌려서 저희들 안 굶긴 게 ...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거" (366)라고 이모에게 말해 주며 이모가 털어놓은 자신의 인생사에 깊이 공감해 그녀를 껴안고 "사랑해, 사랑해" (367)라고 말해 줬다. 춘희의 아메리칸 드림은 결코 '아메리칸'이 아니라 '코리안'이라는 인상은 끝내 지울 수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코리안' 드림은 2022년씩이나 된 한국에서도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전후의 시집살이와 그 남자와의 추억을 중심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지처럼 늘여 놓지만, 결국 한 데 모으면 '낭만을 잃어버린 자들이 어떻게 낭만을 되찾는가'라는 주제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적으로 화자가 은근히 싫어했던 광수라는 조카가 얼마 전 대뜸 집에 찾아와서 베트남에서 한국 회사 운전수로 일하다가 다리를 절게 됐고, 또 그 과정에서 치료를 잘못 받아 세 명이나 되는 아이가 모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건의 연속'에 대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장면도 바로 광수가 자기만의 낭만을, 자기만의 존엄성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해석된다. 물론, 작가 박완서는 그런 광수를 향해 그녀의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낭만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갈래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와 그 남자에게는 낭만이 전쟁 중에도 시를 읊조릴 수 있는, 문학을 탐미할 수 있는, 전축에 독일 가곡 LP판을 틀어놓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었고, 춘희에게는 자기 희생에 대한 가족의 인정이었으며, 광수에게는 착취된 시대에 대한 보상이었다. 화자와 그 남자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서로에 대해 애틋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낭만에 관한 동일한 관념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집살이에 대해 화자는 '문화의 차이'가 그렇게 무섭고 적나라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화자가 결혼해서도 그 남자를 잊지 못했던 것은 남편으로부터 주급을 타 미리 정해진 메뉴를 위한 장을 봐 오고 한 톨의 변화 없이 규칙적으로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새로운 전후의 문화에서 벗어나 간질거리는 낭만을 다시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한편으로 화자의 '착한' 남편 전민호 씨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여러모로 보건대 그의 낭만은 분명 카메라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카메라를 팔아 버린 그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회수했을까. 이러나 저러나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장편 소설은 화자가 "마지막 전쟁어머니"인 현보의 어머니 별세 소식을 듣고 수유리의 그 남자네 가정집을 방문해 그 남자와 "[그녀]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던] ...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 (375)한 처음이자 마지막 포옹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생선은 으레 졸이거나 절이거나 고추장찌개를 하는 줄 알았는데 준치로는 맑은 장국을 끓였다. 새파란 쑥갓과 실파가 동동 뜬 준칫국은 하나도 비리지 않고 깨끗하고 감미로웠다. 시어머니의 기술적인 잔칼질 때문에 가시도 문제되지 않았다. 나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준칫국을 맛있게 먹다 말고 맛도 맛이지만 손질이 그렇게 까다로운 음식을 마치 콩나물국 먹듯이 예사롭게 먹는 그들 모자에게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 비싼 커피를 사 왔네요."
"본디가 없어도 분수가 있지, 이사 온 집에 커피는. 싸가지 없는 년."

무시하면서 바라는 건 많다는 춘희 말이 생각났다.

 

P.S.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박완서 다큐멘터리 3편의 취재원들에 조금 더 깊게 공감하게 됐다. 예를 들어, 시집살이 중 화자가 느낀 환멸은 한경희 박사가 말한 "입"이라는 상징과 이어지고, 권영민 선생님이 집어내신 박완서만의 말 맛도 제대로 느끼게 됐다. 게다가 1편 및 2편 취재원인 여정성 교수님의 말마따나 내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내 속에 내밀하게 숨어 있던 감정이나 생각을 탁월한 작가의 문장에서 발견하자니 속이 뜨끔뜨끔거렸다. 개인적으로 몇 겹의 고난을 동시에 겪어내야 했던 4월을 보내며 이 아름다운 50년대의 보고를 읽고 나니 마치 김화진 편집자의 평처럼 '삶에 대한 욕망'을 다시 느끼게 됐으며, 무엇보다 담백한 맛의 한식을 먹고 싶어졌다. 우리 말을 꼭꼭 씹고 나니 우리 음식마저 먹고 싶게 되니, 참 웃길 노릇이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현대문학, 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