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마음>
드디어 그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 이제 일본 문학과 관련해 수다를 떨 때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에 더해 나쓰메 소세키까지 읽어 봤다고 자만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위대한 작가들이 분신처럼 남긴 소설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원래도 이것저것 했다고 나열하기—혹은 자랑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내 完도서 목록에 『마음』을 추가하려는 알량한 속셈만으로 책을 집지는 않았다. kTA(카투사 훈련소)에서 3주를 보내고 맞이한 군생활 첫 외박 기간 동안 백화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부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랐다. 지난 8월 논산에 들고 갔던 책들은 하나같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들이었기에 준비 운동 없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텍스트를 원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자마자 보인 코너가 때마침 일본 문학이었고, 또 서가 바로 앞에 서자마자 보인 도서가 〈열린 책들〉에서 출간한 『마음』이었다. 육군 훈련소 분대원들 중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가져온 친구가 생각나 살짝 반가운 심정으로 책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 봤다. 표지도 평범하고 — 디자인을 따지자면 차라리 〈현암사〉 것이 훨씬 낫다. — 그다지 관심을 끄는 소개 문구도 없었지만, 일단 ‘고전’인데다 제목과 목차간의 괴리가 그 사이를 스스로 좁혀 보고 싶다는 나의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마음』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그리고 「선생님과 유서」의 세 꼭지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지난 천 년 동안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대단한 수식어로 말미암아 엔도 슈사쿠의 소설보다도 농밀한 심리 및 그 변화의 묘사는 기본이요,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완벽한 기승전결의 구조로 말미에는 문학적 카타르시스가 빗발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소설의 목차를 보는 순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역시나 나의 바람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느 나라가 됐든 20세기 전반에 쓰인 사회 소설을 되도록 기피하는 편이다. 물론 이 명제를 위반하는 사례들—이미 오래 전부터 천착했던 프루스트의 소설이 떠오른다—은 얼마든지 나오겠지만, 똑같은 시대상을 그린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현재와 그나마 가까운 시대의 표현을 선호한다.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당연지사 아닌가. 재미로 읽는 글에서 마구 이질감이 묻어 나와 일종의 착란 현상을 일으킨다면 유쾌한 경험은 못 되겠다. 더군다나 ‘일본’의 ‘근대’ 소설은 나와 전혀 상응하지 않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파악한 바이니 오류가 있더라도 양해를 구한다). 첫째, 염세주의적인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간 실격』의 주인공이라든지. 고교생 시절 일본어과 독서감상문 대회에 출전하려고 급하게 읽었지만, 도대체 그런 내용에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감상문 쓰기조차 포기했다. 그리고 그러한 막막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라는 나의 신념에 정확하게 반대되기 때문인지 공감하기가 무척 어렵다. 게다가 배경이 같은 시기의 한국이었다면 개인의 염세주의가 십분 받아들여지지만, 메이지 유신에 성공해 사회·경제적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일본에서, 그것도 부르주아 계급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살기 싫다며 괴로워하는 것은 어쩌면 투정처럼 비춰지기까지 한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대자보에 붙은 대회 수상자 명단 앞에서 ‘대단한 이해력과 감수성의 소유자들이군’이라며 속으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애매한 담화 형식의 서사 구조로 뭔가 가르치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언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장편 영화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소식을 들어 해당 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펼쳤는데, 외삼촌과 그 조카의 담화만 쭉 이어져서 실망했다. 가르치려 해도 소설다운 자연스러움을 빌려 부드럽게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는 없었을까. 『마음』에도 어김없이 염세주의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막상 읽기 시작한 후에 알게 됐다. 목차로부터의 불안은 아무리 나쓰메라고 해도 형식의 옛스러움에서 비롯되는 이질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작가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억울하고 부당한 처우는 없겠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내게는 약효를 얻기 위해 쓴맛을 감수해야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마음』은 고전임이 분명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일본 근대 초기 소설의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간의 마음을, 특히 그 동태를 아주 자세히 보고한다. 목차에서도 드러나듯 작중에는 선생님, ‘나’,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는 세 명의 주요인물이 나타난다. 부모님이라는 단어에는 당연히 어머니도 포함되지만,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메이지 시대 말기에 — 더 정확히는 1912년에 — 아버지는 신장병과 투병하며 삶의 마지막 단계를 막 지나고 있었다. 따라서 나쓰메 소세키가 독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내보이는 ‘마음’은 소설의 세 주요인물의 것이다. 그중에서도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의 심리가 가장 내밀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나’라는 1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따라 당시 상황이 간접적으로만 파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어려운 과제는 개인의 손에 맡겨진다. 무명의 서술자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루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일종의 회고록 형식으로 과거의 일들을 재생한다. 당시 서술자는 시골의 ‘돈 조금 있는’ 집안의 막내로 홀로 상경해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제국대학까지 졸업하는, 한 마디로 학생이었다. 아직 사회 경험이 전무한 학생이었으므로 서술자는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신 훗날 어른으로 성장한 현재의 서술자가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그때그때 짧은 사족을 덧붙이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서야, 즉 사회의 거뭇한 때를 제 몸에 어느 정도 묻히고서야 선생님의 염세주의적 철학을 비로소 꿰뚫게 된 듯하다.
‘나’의 선생님을 향한 존경은 치기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죽하면 소설의 첫 장에서부터 “그 사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반드시 〈선생님〉이라고 하고 싶어진다”라며 “펜을 든 지금도 그런 기분은 마찬가지”고, “데면데면한 알파벳 머리글자 같은 건 도저히 쓸 마음이 나지 않는다”라고 고백하겠나 (9). 소설 전체에서 “알파벳 머리글자”로 지칭되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바로, 「선생님과 유서」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옛 친구인 K다. 「선생님과 유서」는 선생님이 자결하기 전에 서술자의 앞으로 남긴 유서의 전문이므로 K라는 호칭도 선생님 본인이 고안했다. 하지만 생전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고작 알파벳 하나로 치환했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를 멸시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유서를 통해 본인의 치부를 낱낱이 고하면서도 차마 그 부끄러운 이야기에 적나라한 실재성을 부여할 수는 없었던 선생님의 “태생적 경박함”을 드러낸다 (107). 선생님은 자신이 살아생전 겪은 부당함과 본인이 지은 죄를 유서에 문자 그대로 쏟아붓기는 했지만, 끝끝내 자기 자신, 자신을 배반한 가족들, 부인(혹은 아가씨)와 그 어머니, 그리고 K의 ‘이름’을 익명으로 남긴 것은 “내 과거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조리 사람들에게 참고로 제공”하겠다는 그의 결심에 살짝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312). 그러나 메이지 말, 다이쇼 초를 살던 서술자에게는 선생님의 모든 것이 존경스러웠나 보다. 첫 장의 한 문장을 놓고 지나치게 해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서술자의 ‘알파벳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선생님을 메이지 시대 이후 완전히 근대화된 일본인의 정신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단언처럼 들린다. 선생님 본인도 메이지 유신 이후에 태어나 그 격동기를 고스란히 살아낸 인물이었으므로 그가 서양 및 근대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간간이 강조되는 ‘세대 격차’를 고려해 선생님을 위치시켜 본다면, 그는 아직도 ‘吏’에 불과한 ‘나’의 부모님과 서양의 신문물을 스스럼없이 수용하는 신세대의 ‘나’ 사이에 어중간하게 존재했던 ‘士’가 아닐까 싶다 (박훈 2013).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시를 즐겨 읽고, 다도나 꽃꽂이를 취미로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선생님의 집안은 막부 말기부터 출현했던 ‘칼 찬 사대부’의 전형으로 보인다. 비록 박훈 교수가 주창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경세학으로서의 유교를 주로 수용한’ 주체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유교적 가풍과 문화에 길들여졌을 것으로 유추된다 (박훈 2013). 그렇다면 선생님이 왜 그토록 자신이 K에게 행한, 혹은 행’해 왔던’ 짓에 죽고 싶을 정도의 죄책감을 느꼈을지를 이해하는 또 다른 실마리가 주어진다. 모든 현대인들이 연애와 관련해 사상이 자유롭지는 않겠다만, 적어도 친구의 사랑을 가로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이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니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수준의 자기 혐오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18). 의식적으로인지 무의식적으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무엇보다도 義를 중시했던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배양된 인간의 마음이 정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도의로부터 탈선해 버린다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마음은 그 후 얼마나 처연한 고통 속에 뛰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이 글이 감상문이려면 줄거리 요약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서술자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아직 고교 3학년이던 때의 가마쿠라에서였다. 서술자는 (거듭된 혼사 강요를 피하려는) 친구와 함께 여름방학을 나기 위해 가마쿠라에 갔지만, 애석하게도 친구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고, 따라서 서술자는 홀로 피서지에 남겨졌다. — 여담이지만, 이 짧은 배경 설명에서조차 시대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고작 열여덟 살의 나이에 결혼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서야 하숙집 아가씨와 혼인했으니 나름 늦게 한 편이다. —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돈도 넉넉치 않던 ‘나’는 거의 매일 바닷가를 찾아가 수영을 하고는 했는데, 바로 거기서 어느 서양인과 가까이 지내는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처음에 그와 친해지려고 하는 ‘나’를 애써 피했지만, 탈의실에서 ‘나’가 그의 안경을 바닥에서 주워준 것을 계기로 바다 수영도 같이 하고, 식사도 같이 하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그 무렵 ‘나’는 선생님과 친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 반해 선생님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해한다. 소설의 ‘나’뿐 아니라 독자인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 그리고 누군가에게 다가감과 동시에 상대도 호의를 베풀어 줄 때의 그 성취감이란! — 상황을 단지 서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은 채 잘 묘사했다고 생각했다. 도쿄로 돌아온 ‘나’는 2학기 중반이 돼서야 문득 선생님이 떠올라 그의 주소로 한 번 찾아간 이래로 선생님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물론, 선생님의 부인인 시즈와도 사귀게 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나’는 대학—당시에는 대학이 도쿄대밖에 없었다.—에 진학하고, 여전히 선생님과 활발히 왕래하다 졸업 논문을 써야 하는 시점에 이르러 한동안 선생님 댁을 방문하지 않다가 논문을 탈고한 “천엽벚나무 꽃이 지고 그 가지에 어느새 새잎이 돋아난 초여름 무렵”에서야 다시 선생님을 찾아 뵙는다 (76, 77). 이때 ‘나'의 심정을 그린 작가의 표현이 그야말로 기가 막힌데, 그 문구를 여기 인용하고 싶다:
나는 새장을 빠져나온 작은 새 같은 마음으로 넓은 천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자유롭게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곧장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거뭇거뭇한 가지 위에 움트듯이 새순이 돋아나고, 석류의 시든 줄기에서는 반들반들한 다갈색 잎사귀가 부드러운 햇빛을 반사하는 것이 가는 길목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광경을 본 듯한 진기함을 느꼈다. (77)
나도 고교생 시절 큰 과제나 시험을 끝내고 그 주 금요일에 집으로 가는 길이면 매번 이런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정갈한 문장들이 참으로 반가웠다. 대학생인 지금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듯하다. 한 세기도 전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쓰메 소세키가 아직도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문인인 데는 시대를 타지 않는 세련된 표현력도 제 몫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실 ‘나’는 논문 집필을 시작하기 전의 겨울에 아버지의 신장병 증세가 악화됐다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학기 중에 급히 본가로 내려갔다 온다. 다행히 아버지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서술자는 고향에서 해를 넘기고 상경한다. 마침내 졸업 논문이 무사히 통과되고 — ‘나’의 기대만큼 지도교수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 마지막 구술평가까지 마쳐 6월에 문과 대학을 졸업한 ‘나’는 선생님 내외로부터 졸업 축하 저녁 식사를 대접받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가던 식사의 말미에 선생님이 문득 부인에게 갑자기 자신이 죽는다면 어떨 것 같냐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자 ‘나’는 조촐한 축하연을 마무리하고 선생님 댁을 나선다. 그것이 ‘나’와 선생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건강이 다시 악화돼 여름 내내 고향에 내려가 있는다. 그곳에서 부모님은 ‘나’에게 졸업도 했으니 이제는 취업만 하면 걱정이 없겠다며, ‘네가 그토록 존경한다던’ 선생님으로부터 취직 권유는 없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역시 자식 걱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양태로 진행되는 듯하다. 이에 ‘나’는 마지못해 선생님에게 안부 인사 겸 일자리를 묻는 편지를 부치지만, 그와 관련해 돌아오는 답장은 없고, 오직 짤막한 전보만 돌아온다.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중 평소 신장병을 앓던 메이지 일왕이 승하하고, 그 소식에 ‘나’의 아버지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生의 활기를 시름시름 잃어간다. 결정적으로 일왕의 장례식 행렬이 진행되는 중에 메이지 시대의 영웅이었던 노기 장군이 그의 아내와 함께 순사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는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른다. 아버지가 생사를 오가느라 ‘나'는 물론 저 멀리 떨어져 사는 ‘나’의 형과 매제 — 여동생은 당시 임신 중이었다. — 그리고 어머니마저 정신 없는 와중에 선생님으로부터 두 번쨰 편지이자 유서가 도착한다. ‘나’는 편지의 길이에 압도돼 나중에 읽을까 하다 중간에 적힌 불길한 문구를 우연히 읽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집을 뛰쳐나와 도쿄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마음』의 마지막 장인 「선생님과 유서」를 통해 유서의 내용이 독자들에게도 공개될 뿐, 소설은 그대로 끝난다.
여러모로 미적지근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역자는 후기에 아마도 서술자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하다. 선생님은 아직 대학생이던 ‘나’에게 대뜸 집안의 자산은 어느 정도며, 형제자매는 몇 명이고, 아버지의 병환은 어떤지를 꼬치꼬치 묻는다. 그 이유인즉슨, 선생님 자신도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친척들에게 억울하게 자산을 뺏기는 등의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어려 세상물정을 몰라 그저 작은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고, 순진하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더니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 내가 애정하는 너라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재산 목록을 정리해 형제들끼리 공정히 나누어 가져 피로 맺은 연을 보존하라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나쓰메는 도쿄행 기차 안에서 유서를 골몰히 읽는 ‘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뿐, 과연 ‘나’가 지금까지도 가족과 원만히 지내는지, 재산 분할은 잘 됐는지, 누군가에게 배신당하지는 않았는지 등의 사족은 붙이지 않는다. 역시나 나 스스로도 사족이라고 인정하고 있기 떄문에 왜 더 얘기하지 않느냐 등의 불만은 토로하지 않겠다. 나머지를 상상하는 것도 소설 읽기의 큰 재미며,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그러한 불상사를 피했다’라는 식의 결말은 전혀 고전답지 않다. 사실 유서의 내용 자체가 앞의 두 장에 전개된 내용보다 훨씬 충격적이기 때문에 서술자의 남은 생애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대다수 독자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유서에는 그가 재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배신받은 것부터 시작해 그로 인해 “[가족들]을 미워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오하는 법을 배”운 경위와 K와의 하숙생활 중 일어난 미묘한 신경전 및 치정극까지 선생님의 생애 중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90). 특히 하숙집 아가씨를 두고 K와 빚은 내적 갈등이 K의 고백을 기점으로 외재화되면서 결국 K는 자살하고 마는데, 이로 인해 선생님은 타인의 배덕으로 인해 인류애를 상실했던 자신 역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를 그토록 쉽게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리게 된다.
솔직히 「선생님과 나」에서 어른이 된 ‘나’가 선생님을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껴안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회고하는 대목에서 나는 선생님이 유서에 적힌 내용보다는 훨씬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에상했다 (24). 다시 말해서, 가족의 배신과 친구에 대한 나의 배신보다 더욱 극적인 사건이 그의 염세주의적 자아 밑바탕에 존재하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일종의 내성이 생겨 버린 현대인의 이기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분석했듯 유교적 환경에서 자라난 사무라이 계급의 선생님에게는 배덕의 이중 나선 구조야말로 본인에게서 “세상에 나가 일할 자격”마저 박탈할 만한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여진다 (37). 이쯤에서 인간의 도덕성에 관한 선생님의 사상을 곱씹어 보자: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의 인간이 이 세상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틀로 찍어 낸 듯한 그런 악인은 이 세상에 없어.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러다가 여차할 때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것이지. 그러니 더더욱 방심할 수 없다는 거야. (83)
그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대쪽같은 삶을 걸어 나간다고 믿으면서도 빛이 들지 않는 곳의 한 구석에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묻어 버려 애써 잊으려 하는 것. ‘나’가 선생님의 유서를 읽고도 줄곧 그를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음 본연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삶을 포기할 정도로 순수한 양심에 존재한다. 역으로 지식인으로부터 선생님만큼의 도덕성을 열렬히 바라 왔기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결국 고전이 꾸준히 읽히는 이유를 알려고 애쓰다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저 진실한 것이지요. 진실하게 인생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겁니다.
P.S. 내가 선생님이었어도 K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 같다. 자꾸 내가 다 차린 밥상에 와서 숟가락만 얹으면서 내 것마저 탐내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이 시대의 지성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 그리고 K의 고백 이후 선생님이 하숙집 부인에게 대뜸 아가씨와의 혼인을 신청했을 때 내가 다 민망해서 책을 몇 번이고 내렸다 들었던 것 같다.
P.S. ii) 선생님의 자살에는 노기 장군의 순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의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해진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야 노기 장군과 같은 세대니까 그 의미, 즉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온몸으로 느끼셨겠지만, 정작 순사를 비난했던 新지식인 계층의 선생님이 노기의 자취를 따라간 것은 의아하다. 노기 역시 평생을 많은 젊은이들을 불필요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살다가 메이지 일왕이 승하하고 나서야 할복했다 - 일왕은 살아생전 죽으려 하거든 본인이 죽고 나서 숨을 끊으라고 노기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자살은 죄로 얼룩진 현생을 조금이나마 용서받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해석해야 마땅할까. 유서에 홀로 남을 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까지 노기 장군과 유사하다. 그리고 진짜 여담인데,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의 부인, 시즈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유서에도 시즈에게만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으니, 아마 시즈의 마음 속에 드리운 그 두꺼운 구름은 평생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으리라.
참고문헌:
- 박훈. 〈明治維新과 ‘士大夫的 정치문화’의 도전: ‘近世 동아시아 정치사의 모색’〉. 《역사학보》, no. 218, 2013, pp. 41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