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c center에 내려서부터 진짜 모험이 시작됐다. 말이 좋아 '모험'이지, 심적으로 너무 고생했던 탓에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인상이 아직까지도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도대체 왜 아무도 내게 신한 체인지업 카드는 물론 하나 비바 X 체크카드에 우리 학교 학생증 마스터카드까지 전부 우버나 리프트(Lyft)에 등록되지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해 주지 않은 거야. ㅠㅠ 어쨌든 지금은 코다 쿠미의 "사랑의 노래(愛の歌)"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もし君に一つだけ願いが叶うとしたら今君は何を願うのそっと聞かせて
사실 오늘 오전에 타겟에서 18만 원 긁고 집 오는 길에 Nami sushi라는 레스토랑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더니 하루 종일 J-pop을 듣고 싶어졌다 - 핑계다, 나는 원래도 일본 노래 좋아한다. ㅋ 북캘리포니아는 겨울이 우기라서 그런지 요즘 데이비스(교환교가 위치한 동네)는 밤새 가랑비가 내리고, 아침에는 흐리다가 오후에는 햇볕이 쨍쨍한 날씨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약간 구름낀 하늘에서 점차 햇볕이 들기 시작하는 즈음에 밖을 걷고 있었는데, 절로 "사랑의 노래"가 떠올랐다. ㅋㅋ
1. 2021년 12월 28일 - 1일차
1. SFO 도착.
2. BART 타고 에어비앤비(231 Scott Street) 도착.
3. Little Chihuahua에서 저녁 '결제' 후 계획 수정 및 휴식.
여기까지는 여담이고, 본격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당일부터 사흘간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녔던 기억을 끄집어 내 보자. 계획을 짜는 일은 나이 들수록 부담스럽고 힘겨워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획 없이 낯선 곳을 탐방하는 것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재작년 겨울에 친구와 떠났던 제주도 여행도 별다른 계획 없이 출발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자기 전에는 대충 내일 이러이러한 곳을 저러저러한 동선으로 둘러 보면 되겠군, 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워낙 촉박한 일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꼴이라 기내에서 3일치 여정을 짰다. 그래서 속으로 '완벽해'라면서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까지 했는데... 문제는 Civic center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공항에서 BART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까지 가는 길에 우버와 리프트 앱에 새로 발급받은 신한 체인지업 체크카드와 하나 비바X 체크카드를 등록했다. 그리고 Civic center에서 하차해 지상으로 올라와 근처의 리프트를 호출하려고 절차를 밟는데, 글쎄 몇 번을 시도해도 자꾸만 결제 수단에 에러가 생기는 것이다. 우버도 똑같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서울대 학생증 마스터카드도 등록해 봤는데 결과는 피차일반이었다. 이럴 거면 국내 카드사들은 마스터카드 로고를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카드 앞면에 새겨 넣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렇게 나는 찬 바람이 매섭게 재킷 속으로 스며드는 샌프란시스코의 이상한 냄새로 가득한 시내 한가운데서 20분 동안 큰 캐리어 두 개와 큰 가방 두 개를 꼭 쥔 채 서 있었다... 되도록 초짜처럼 보이지 않고 싶었지만, 거리에 가만히 서서 핸드폰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어색했다. 사실... Civic center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보다 다섯 칸 정도 앞에 서 있던 노숙자가 대놓고 소변을 누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부터 나는 직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 날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란 점을.
멍청하게 서 있어 봤자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로컬 택시를 호출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 사후의 관점에서는 불행이라고 판단했다 - 한국에서 일 주일치 해외 로밍을 해 놓고 와서 구글에 샌프란시스코 Yellow cab 전화번호(415-333-3333)를 찾아서 차를 부르려고 했는데, 세상에 자동응답기가 무슨 도로명 주소를 대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 와 본 곳의 도로명 주소를 찾기란, 그리고 이미 매우 당황한 상태에서 침착하게 정확한 주소를 알아내기란 무척 어렵다. 아마 나의 후진 영어 발음도 자동응답기가 그냥 꺼져 버리는 데 크게 일조했겠지만. 그렇게 내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지마저 처참히 짓밟히고 나니 정말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Painted Ladies 근처에 위치해 있었고, 따라서 현위치인 Civic center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애플 맵'이 알려 줬다 - 나는 국내에서는 카카오맵, 해외에서는 애플 맵을 자주 사용해 왔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서 걷기 시작했는데, 시내에 만연한 정체 모를 이상한 냄새며 스케이트 보드를 요란하게 타고 다니는 힙스터(?)들이며 궂은 날씨며 다 나의 방향 감각을 마비시켰다. 그래서 결국 애플 맵이 친절하게 알려준 동선에서 명백하게 벗어나 버렸고, 나는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의 미아가 될 위기에 직면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지나가는 행인 한 분께 다짜고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도로명 주소가 뭐냐고 여쭤 봤다. 다행히 그분은 바로 근처에 사시는 아주 친절한 행인이셨고, 내가 다시 Yellow cab - 이번에는 심지어 서비스 센터로까지 전화했다 - 에 전화해서 택시를 '확실하게' 잡을 때까지 옆에 남아 있어 주셨다. ㅠㅠ 택시 호출에 성공하고 나서 그분은 내게 어디서 왔냐고 여쭤 보고는 유유히 횡단보도를 건너 사라지셨다... 정말, she's an angel. ㅠㅠ 그렇게 나는 13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가 호출한 택시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님은 키가 멀대처럼 크셨는데, 그분도 정말 친절하셨다. 엉망이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첫인상에 행인 A와 택시 기사 B는 그나마 밝은 붓터치를 더해 주셨다. 앞으로 건승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겨우 에어비앤비에 도착했건만, 나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5~7분 정도를 더 헤매야 했다. 왜냐하면 출입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관처럼 생긴 문이 있기는 했지만, 열쇠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단 에어비앤비 채팅으로 숙소 주인에게 어떻게 입장할 수 있냐고 질문했다. 대략 2분 뒤에 답장이 왔으나, 이전에 자기가 보내 놓았던 숙소 이용 수칙을 다시 읽어 보라는... 그래, 네 말이 맞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미리 꼼꼼히 읽지 않고 부랴부랴 돈만 내고 왔으니까 헤매겠지. 그래도 리셉션이 있다면 제발 너희가 앞으로 나와서 나를 맞아 주면 안 될까... 어차피 세금이나 서비스 수수료 붙여서 1박에 21만 원 돈이었다면 그냥 마음이라도 편하게 호텔로 갈 걸. 등등 여러 '마음의 소리'를 속으로 읊으며 안내문을 정독한 끝에 체크인할 때는 차고를 통해서 들어와야 함을 알아냈다. 그래서 차고로 들어갔더니 또 무슨 숙소 내부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지 않은가. ㅠㅠ 결국에는 에어비앤비 측에서 관계자를 보내서 나를 안으로 들여 보내 줬다. 들어갔더니 가파른 계단이 눈 앞에 놓여 있었고 - 왜인지 모르겠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대부분 주택들이 네덜란드 가옥마냥 옆으로 홀쭉하고 앞뒤, 위아래로 길게 생겼다 - 안 그래도 힘든 마당에 무거운 짐들을 들고 2층을 올라 가느라 완전히 녹초가 돼 버렸다. 내 방으로 들어가 짐을 놓고 손을 씻으니 벌써 오후 5시였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오후 2시에 SFO에 도착해 3시까지 입국 수속을 밟고, 4시까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크로스백과 지갑, 그리고 우산만 챙겨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고 바닷가를 관광해야 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5시였고, 해는 4시 50분경부터 지기 시작해 금새 깜깜한 밤이 돼 버렸다. 게다가 에어비앤비에 너무나 고생해서 와서 더이상 신경을 곤두 세우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획이 틀어져 버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차피 데이비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30분만에 갈 수 있으니 여러 차례에 걸쳐 샌프란시스코를 구석구석 살펴 보기로 결심했다 -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지만. ㅋ 날이 추웠기 때문에 우선 방 안에 있던 작은 허니웰 히터를 켰고, 발을 녹이면서 숙소 근처의 맛집을 열심히 검색했다.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Little Chihuahua라는 멕시코 음식 가게가 yelp에서 4/5점을 받았길래 거기서 부리토 하나를 사 오면서 숙소 바로 건너편의 슈퍼(Santa Clara Organic Market)에서 물을 사기로 했다. 내 신한 체인지업 카드의 첫 결제 내역은 바로 Little Chihuahua 부리토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대실패.' 부리토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세 명 정도의 현지인들이 음식을 픽업해 가는 모습을 보고 '여기 맛집인가봐'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것은 김칫국에 불과했다. 한 입 먹었더니 입 안 전체에 퍼지는 고수의 향은 필요 이상으로 강력했다. 고수는 보통 자그마한 이파리 하나만 넣어도 음식에 맛이 배는데, 이 부리토 안에는 고수 이파리가 엄-청 많았다. 게다가 굳이 고수를 들먹일 것도 없이 그냥 부리토가 참으로 맛없었다. 미국이라 그런지 크기는 엄-청 컸는데, 덕분에 대용량의 음식 쓰레기가 여행 첫 날부터 발생했다. ㅋ 왜냐하면 거짓말 않고 포크로 세 번 떠 먹고는 더이상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먹으면 토할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짐을 풀면서는 배가 무지무지 고팠는데, 부리토의 맛을 보니 더 이상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슈퍼에서 물, 페리에랑 같이 사 온 킨더 초콜릿 두 개를 먹고 그냥 씻고 잠들었다. 참고로 첫 날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정신이 문자 그대로 하나도 없었기에 사진을 찍을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어차피 관광도 포기했다면 가는 길 사진이라도 찍어 놓지. ㅋ
요약: 신한 체인지업 체크카드와 하나 비바X 체크카드는 우버나 리프트에 등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당일 곤혹스러운 일을 겪고 숙소에서 폭풍 검색을 한 결과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적어도 체인지업 카드는 우버/리프트와 상응하지 않는다는 후기가 대다수니 되도록이면 비자 카드 한 장을 들고 오시거나 오자마자 미국 은행 체크카드 계좌를 여세요~ ㅋ 갑자기 왜 존댓말 썼지? 사실 마스터카드가 안 돼서 숙소에 짐 푼 다음에 아빠한테 전화로 푸념하면서 아빠 비자 카드로도 등록 시도해 봤는데, 똑같이 오류가 떴다. ...? + 그냥 여행 첫날은 큰 호텔에서 묵자. ++ 여행 다닐 때는 음식에 돈을 아끼지 말자. Yelp 평점 4.5점 이상인 곳에서 식사하자.
2. 2021년 12월 29일 - 2일차
1. The Mill에서 아침 식사.
2. Alamo Square 산책 및 Painted Ladies 구경.
3. Cathedral of St. Mary of the Assumption 구경.
4. Powell Street Station에서 AT&T, Bank of America 업무 처리.
5. Westfield에서 쇼핑.
6. Chinatown Dragon Gate 찍기.
7. Alexander Book Company 구경 및 쇼핑.
8. Pier 14에서 Bay Bridge 구경.
9. Ferry Building에서 점심 식사.
10. Coit Tower 방문 및 구경.
11. Fisherman's Wharf 방문 및 Pier39에서 바다사자 무리 구경.
12. Ghiradelli Square 방문.
13. Powell/Hyde 케이블카 탑승.
14. 숙소에서 휴식.
전날 일찍 잠든 덕분에 일찍 일어났다. 뭐, 애초에 한국에서도 새벽 5시에 자서 아침 10, 11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세 달 정도 했더니 시차로 인한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ㅋ 자기 전에 간단히 계획을 수정하고 숙소 근처에서 할 만한 일들을 찾아 뒀다. 그때 숙소가 Painted Ladies라는 빅토리아풍 주택 시퀀스와 가까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막상 예약할 때는 샌프란시스코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오 이러면 어디든 다니기 편하겠는데?'라는 속셈이었지만. ㅋㅋ Painted Ladies와 가까우면서 숙서에서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유명한 토스트 가게(The Mill)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아침을 떼우기로 결정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서 무얼 하든지 네이버 블로그 등에 기록해 놓는 습관을 고루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여행 초보나 다름 없는 내게는 그분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지금 이 글도 한편으로는 내 부족한 작업 기억 용량을 배려해 기억을 아웃소싱하려고 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UC Davis나 캘리포니아에 처음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안을 하고, 날씨 앱을 확인해 옷을 든든히 입은 다음 우산과 배낭과 새로 산 크로스백을 매고 거리로 나섰다. 이른 아침 - 6시 45분 즈음이었다 - 이라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우중충한 하늘 아래 몇 대의 자동차와 버스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Little chihuahua에 갈 때 슬쩍 보니까 부리토 가게나 토스트 가게가 마주보고 있는 Divisadero Street이 나름 볼거리가 될만한 상점도 있고, 대로인 것 같기도 해서 대로변을 따라 The Mill까지 쭉 올라갔다. 이때까지는 아직 관광객 티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쉽게도 Divisadero Street을 담은 사진은 없다. 게다가 솔직히 미국은 민간인이 총기를 소지할 수도 있고, 샌프란시스코에 노숙자도 많아서 관광객이라는 티를 냈다가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한 마디로 겁이 났기 때문에 최대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에 집중했다. The Mill에 도착했더니 내 앞에 두 명의 손님이 있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메뉴판 가장 위에 적힌 Cinnamon sugar toast 한 잎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솔직히 밤새 비가 내려서 밖은 다 젖어 있었기 때문에 매장 안에서 먹고 나가고 싶었으나, 오미크론 확산세로 인해 가게 내 취식은 불가능했다. ㅠ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냅킨 몇 장을 챙기고 The Mill과 Painted Ladies 사이에 위치한 Alamo Square라는 공원 벤치에 가서 '서서' 아침을 먹었다. ㅋㅋ
토스트는 아주 맛있었다. 그야말로 시나몬 설탕에 빵을 재우다시피 해서 그 위에 sea salt를 한 줌 정도 뿌린 토스트였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전날 소화시킨 음식이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배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금이 약간 짜긴 했지만, 입에 감칠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이 해냈다. 그런데 아메리카노는 그냥 뜨거운 맹물이었다. Alamo Square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샌프란시스코 현지인들을 유유히 바라봤다. 그렇다고 대놓고 관찰하면 낌새를 알아차리거나 불쾌해 할까봐 여러 차례 두리번 거리면서 조망했다. 내게는 그들도 하나의 풍경이나 다름없으니까, 마음 속으로 양해를 구했다. ㅋ Alamo Square는 근사한 공원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오르막, 내리막도 있고 - 따라서 '정상'이라고 부를 만한 지형도 있다 - 웅장하고 멋드러진 나무들이 운치 있게 서 있는, 혹은 배치돼 있었다. 여행 이튿날은 하루종일 샌프란시스코에 구름이 껴 있거나 비가 내렸기 때문에 Alamo Square 정상에서 저 멀리 골든게이트 교나 샌프란시스코 도심 전경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멋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집들이나 안개 낀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 들면서 점점 해가 쨍쨍한 날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적당히 흐린 날 내 몸에는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감도는 듯하다. 그런 것을 영감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다. ㅋ The Mill이 Alamo Square의 서쪽에 있다면, 그 유명한 Painted Ladies는 동쪽에 있었다. 나는 유명하다길래 뭔가 대단한 건축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파스텔 톤의 무지개색 집 몇 대가 따닥따닥 붙어 있을 뿐이었다. Alamo Square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해당 풍경을 구경했는데, 건물 자체가 예쁘게 생겨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달까나. 어쨌든 이튿날은 성공적인 아침 식사와 근사한 공원 산책으로 기분 좋게 시작됐다.
사실 나는 전날 겪은 뼈저린 실패 때문에 당장 이튿날 아침이 밝자마자 미국 핸드폰 번호를 개통하고 미국 체크카드 계좌를 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The Mill을 들른 다음에는 AT&T와 Bank of America(BoA)의 개점 시간에 맞춰 9시까지 Powell Street Station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Alamo Square를 천천히 구석구석 구경한 뒤에도 시간은 여전히 7시 40분이었고, 나는 1시간 20분동안 할 일을 찾아내야 했다. Alamo Square에서 Powell Street Station까지는 일직선으로 40분 정도 걸으면 되기 때문에 나머지 40분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가 그냥 Catheral of St. Mary of the Assumption(이름이 왜 이렇게 긴지)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다 걸어서 갔다. 왜냐하면 내게는 시간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더군다나 꼭두새벽 같이 문을 연 명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한적한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걷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의 고풍스러운 시청도 멀리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면 횡단보도 가운데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제대로 된 사진은 찍지 못했다. 뭐, 그래도 남의 나라 남의 도시 시청 하나 보겠다고 내 목숨까지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정도 아쉬움은 감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고풍스러워봤자 짓다가 도시 재정을 모라토리움에 빠뜨려 버리는 성남시청만큼이나 대단할까. ㅋ 성당으로 가는 길에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애들이 조기 축구하는 모습도 봤다. 선수들 중 한 명과는 성당 가는 길목에서 마주치기도 했는데, 아마 그 친구는 지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딱히 감독한테 혼나지는 않은 듯했다. Cathedral of St. Mary는 규모가 엄청나서 너무 가까이 가면 사진 찍기도 어렵다. 그래서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서 그 대략적인 윤곽을 찍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럽의 고딕 양식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니 하는 클래식한 양식의 건축물이 아니라 굉장히 모던하고 참신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나는 건축학과는 아니니까 구체적인 설명을 여기에 늘여놓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샌프란시스코 MoMA 뺨 치게 현대적으로 지어 놓았다. 건축학도들은 한 번쯤 답사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간 김에 성당 내부도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뭔가 현지인들도 깨지 않은 시간에 관광객 한 명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보기에는 - 게다가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미국에서 가장 반감이 심하다는 '불가지론자'인 나는 / 다행히 무신론자는 아니다 - 용기가 없었기에... 또, 딱 9시에 AT&T에 도착하기에는 시간이 약간 촉박해져 있었으므로 별다른 미련 없이 성당에서 Powell Street Station으로 향했다.
Powell Street Station은 관광보다는 급한 용건을 처리하려고 들렀다. AT&T와 BoA 둘 다 들러야 했는데, 마침 Powell Street Station 지점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ㅋㅋ 자, 원래는 한국에서 일주일치 해외 로밍을 해 갔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교환교가 위치한 데이비스에서 미국 핸드폰 번호를 개통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려고 했건만, 우버나 리프트에 결제수단으로서 등록되는 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중대한 문제 상황에 처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급한대로 불을 꺼야 했다. 교환학생 데이터 사용과 관련해서는 보통 Verizon이나 AT&T를 고민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Mint라는 업체에서 특정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용량(?)의 유심칩을 사 간다. 그런데 나는 2021년 2학기가 몹시 바빴고, 거의 몸이 으스러질 정도였기 때문에 통신사에 관한 고민은 최대한 뒤로 미뤄 뒀다. 그 결과 Mint 같은 제3의 서비스를 통해 유심칩을 전달받기에는 출국 일정과 맞지 않게 됐고, 그냥 확실하게 미국 '거대' 통신사에서 번호를 개통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Mint가 어느 나라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사실 이런 통신이나 기계 관련해서는 별로 밝지 않은 탓에 많은 정보를 입수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기도 했다). Verizon과 AT&T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데이비스에는 AT&T 기지국(안테나?)이 더 많다고 해서 AT&T를 선택했다. 게다가 그 파란색 지구본 같은 로고가 뭔가 더 깔끔한 인상을 주기도... ㅋㅋ
개점 시간보다 7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매장 앞에서 우산을 접고 서양인들이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서양에서 우산 쓰고 다니면 대부분 동양인이거나 관광객이더라. 그런데 나는 우산이라는 발명품이 떡하니 있는데 - 그리 비싸지도 않고 - 왜 굳이 비를 맞으며 다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AT&T 직원이 문을 열어 줘 매장에 들어섰고, 나는 어쩌다 정말 넓고 화려한 통신사 매장의 2021.12.29. 일자의 첫 손님이 됐다. 직원이 무슨 용건 때문에 왔냐고 물어서 유심침(sim-card) 사러 왔다고 답하니까 스탠딩 데스크로 나를 안내해서 천천히 여러 옵션을 안내해 줬다. 한 달에 8GB 쓰는 옵션도 있고 등등등 다양했는데 - 미국 교환학생들은 보통 8GB 플랜을 이용하는 것 같다 - 나는 그냥 데이터 무제한 플랜으로 등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이터 무제한 플랜에도 두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지금 사용하는 Unlimited Starter Plan($75/month)고, 다른 하나는 Unlimited Elite Plan($95/month)다. Elite plan을 고르면 40GB 핫스팟 연결에 HBO Max까지 공짜(?)로 준다는 꼬드김이 있었지만 나는 이미 있는 넷플릭스도 안 보니까 그냥 Starter plan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교환학생으로 온 것이라면 내가 UCD 학생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직원이 내게 물어 봤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배낭에 넣어 가져온 중요한 서류들 중에 UCD Acceptance letter을 보여 줬고, 직원 분께서 혼자 태블릿으로 열심히 뭘 입력하시더니 UCD 학생이라는 것을 잠정적으로나마 내 AT&T 계좌에 반영해 놨지만, 나중에 학생증을 발급받으면 그걸로 다시 정식 authorisation이 필요하다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Elite plan으로 선택하면 학생 할인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냥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터 무제한이라서 그런지 요금제가 정말 비싸다. 한 달에 9만 원이라니. ㄷㄷ 한국에서는 2GB짜리 플랜 쓰다가 아빠 몰래 4GB로 올려 놓은 것도 감지덕지했는데... 그런데 나중에 또 쓰겠지만, 나는 이떄 내린 나의 결정에 하루 뒤에 감사하게 된다. ㅋㅋ 그래도 한국에서 미리 시간을 두고 통신사 플랜을 알아 봤다면 더 괜찮은 가격에 개통할 수 있었을텐데, 쓸데없이 돈이 많이 들기는 한 듯하다. 엄마, 아빠 미안~ 참고로 이날 AT&T에서 결제는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내가 앱에다가 내 결제 수단 등록하고 나서 요금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옆에 위치한 BoA에 가서 체크카드 계좌를 만들었다. 여권과 교환교 재학 증명서 비스무리 한 서류가 필요하다. 혹시 몰라서 DS-2019, I-901, 재정증명서 등 온갖 서류를 다 들고 가기는 했다. 내 기억이 부정확하니까 이 글을 보는 prospective 교환 학생 분들은 나처럼 서류를 다 들고 가기를 권한다. 정말 친절한 중국계 미국인 직원 분께서 줄 서는 것 등 하나부터 다 도와주시니 겁낼 필요는 없다. 창구에 가서 나는 교환학생이고, 체크카드 계좌를 열려고 왔다 라고 말하니까 창구 직원 분께서 여권을 확인하시고 담당 직원으로 연결해 주셨다. 담당 은행원(Ms. Hilda Piche)은 정말 친절한 분이셨는데, 계좌를 만드는 중간에 여러 small talk을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UCD 가서 뭐 공부하냐, - 통계학 공부하러 왔다고 말하니까 놀라셨다, 이 동네 외국인 학생들은 죄다 computer science 하러 왔다면서 질린다고 하셨다. ㅋㅋㅋ - 자기 친구 중에도 UCD 나온 애가 있는데 겨울에는 엄청 춥고 여름에는 죽을듯이 덥다면서 어쩌구 저쩌구 담소를 나눴다. ㅋㅋ 체크카드 계좌를 여는 데 대략 2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내가 체크카드는 언제 발급받을 수 있냐고 여쭤 보니까 일주일 정도 걸려서 1월 5일 즈음에 수령할 것이라고 답하셨는데, 이 글을 쓰는 1월 9일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 한국에서는 체크카드 계좌를 만들고 나서 바로 플라스틱 카드도 줬는데, 서양 애들은 확실히 행정적인 부분에서 손이 아-주 느린 듯하다. 그런데 나는 당장 우버나 리프트에 BoA 카드를 등록할 계획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BoA 계좌를 열기로 했기 때문에 플라스틱 카드가 없어도 모바일 뱅킹은 가능하냐고도 여쭤 봤다. 그런데 세상에 모바일 뱅킹, 즉 BoA에 내 체크카드 계좌 등록 정보가 벌써 반영됐는지의 여부는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계좌 연 날부터 모바일 뱅킹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떡하지' 하면서 다음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데이비스까지 우버 타고 가야 하는데 어쩌냐 라고 여쭤 보니까 근처 Walgreens에 가서 우버 기프트카드를 구매하면 된다고 알려 주셨다. 그래서 한결 마음이 놓였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내 BoA 체크카드는 벌써 앱에 디지털로 등록돼 있어서 그냥 BoA 카드로 우버를 결제했다는 후문. 보통 미국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면 계좌 유지비를 매달 일정 금액 납부해야 한다는데, 나는 만 24세 미만의 학생이라서 납부액을 면제받았다. 야호! 그래도 나는 당장 BoA 카드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은행에서 $200만 먼저 입금했다. 이때도 담당 은행원 분께서 내가 짐 정리하는 동안 대신 대기줄에 서 계주셨는데, 나중에 대기하다가 나보고 자기를 따라오라더니 창구 뒷편에 있는 은행 직원 전용 창구에서 대기 없이 그냥 한 큐에 $200을 입금해 주셨다. 감동이야~ ㅠㅠ 역시 내가 좋아하는 BoA와 이름이 똑같은 은행을 선택해서 그런지 행운이 따라 주는 기분이 들었다 (순억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BoA를 나와 길 건너편의 Walgreens에 가서 우버 기프트카드를 구매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내가 들른 매장에는 우버 카드가 없어서 실패했다. 문득 커피가 또 마시고 싶어져서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Westfield 지하1층에 있는 픽업 매장이라서 앉아서 마실 데가 없었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기왕 쇼핑몰 안으로 들어온김에 1층에 있었던 록시땅 매장에서 레몬 버바나 향 핸드크림을 사서 나왔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한 소비도 적당히 즐기기로 했다. ㅋ 비가 오는 데 우두커니 있을 곳도 없어서 Ferry building을 향해 걸어가다가 Peet's Coffee라는 카페를 발견해서 거기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 놓고 30분 정도 쉬면서 우버와 리프트에 BoA 체크카드 계좌를 등록했다. 정말이지, 결제수단으로 등록이 완료됐다는 명쾌한 '띠링' 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상쾌하던지. ㅋㅋ 그리고 비오는 샌프란시스코의 Market Street을 조용히 바라봤다. 아침 10시 20분 즈음이었다.
여기 와서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위에서는 말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지만, 사실 이튿날은 네이버 카페 "미준모"에서 알게 된 20대 초반 또래 남자 분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 컨택을 전날 밤에 하고 잠들었던 것 같다. 동행을 구할까 말까 비행기 타기 전에 꽤 고민했는데, 일단 탑승 전에 댓글을 달아 놓았고, 도착해서 공항에서 확인해 보니 '동행 승낙' 답글이 달려 있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전날 겪은 일련의 불운한 사건 때문에 한국인이 너무 고팠고, 그래서 덜컥 모르는 사람과 낯선 타지를 여행하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나 고도로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고작 하루 문제를 겪었을 뿐인데, 그 옛날에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 중국 등 외국에 정착해 살아갔던 이민자들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ㅠㅠ 하여튼, 12시 30분에 Ferry building 입구에서 뵙기로 했으니까 내게는 아직 두 시간 남짓한 여유 시간이 남아 있었다. 2시간 동안 무얼 할까 Peet's coffee - 나중에서야 미국 서부 커피 체인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에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대로 Alexander Book Company - Market Street 가에 있는 독립 서점으로 현지인 평이 아주 좋다. 나는 데이비스에 입성하기 전에 2022년 달력과 다이어리 겸 플래너를 사야 했기 때문에 들르기로 계획했다. - 로 가기에는 아까워서 차이나타운의 Dragon Gate 사진만 찍고 다시 큰 길가로 나오기로 결정했다. Peet's Coffee에서 Dragon Gate로 가는 길에는 에르메스나 베르사체 등 명품 패션 브랜드 가게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그 길의 행인들이 럭셔리한 차림새로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대부분 나 같은 관광객들이겠지. ㅋㅋ 그동안 뉴욕, 도쿄, 런던 등 차이나타운이 유명한 세계의 많은 대도시를 여행했지만, 왜인지 차이나타운은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Dragon Gate를 실물로 영접하니 감회가 새롭기는 했다. 청록색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차이나타운이 유명하다길래 더 커다란 입구를 상상헀지만, 실물은 생각보다 훨씬 '귀여웠다.' 차이나타운에도 볼거리가 많다고 했지만, 시간 관계상 그 골목 안으로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Alexander Book Company로 향했다.
Alexander Book Company는 비 오는 날 심신에 안정을 찾아다 주는, 아늑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 외양이나 간판이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독립 서점답게 주인의 취향대로 진열해 놓은 책들의 제목을 읽어 보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나는 앞으로 여행할 곳이 새고 샜기 때문에 더이상 불필요한 지출은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들 - 특히 소설 - 이 내게 보내는 반짝이는 시그널을 무시한 채 달력 매대로 직진했다. 우리나라도 점차 책이나 노트 등 종이 관련 물건들이 세련되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외국을 따라잡았다고 선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외국 출판사들은 어쩜 그렇게 예쁜 표지와 기분 좋은 종이 질감까지 신경 쓸 수 있는지. 외국 생활은 상당히 불편하겠지만 적어도 책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비교적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을 것 같기도. 다양한 달력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고양이 만화가 그려진 책상용 달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이 그려진 벽걸이 달력이었는데, 고민하다가 결국 벽걸이 달력을 골랐다. 이 달력 하나로 인해서 내 데이비스 자취방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가구만 있을 때는 조금 삭막했는데, 작더라도 그림이 하나 보이니까 방에 생기가 돈달까나. 이대로 서점에서 나가기는 아쉬워서 책들의 반짝이는 시그널에 항복하고 결국 존 스타인백의 미국 여행 에세이인 <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를 구매했다. 솔직히 Ali Smith의 <How To Be Both>가 먼저 눈에 들어온 데다가 한국에서도 읽어 보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그것을 사려다가 모처럼 캘리포니아에 왔으니까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의 책을 소장하자면서 스타인백을 골랐다. ㅋㅋ 달력이랑 책을 샀더니 서점에서 영수증과 함께 종이 재질의 책갈피도 하나 공짜로 껴 줬다. 사장님 최고~ ㅋㅋ 그런데 슬프게도 플래너는 서점에서 다루고 있지 않아서 사장님께 근처 플래너 가게를 추천 받아서 갔는데... 예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버스를 타고 Ferry Building까지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간만의 해외 여행인데 그냥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엄-청나게 높은 마천루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Salesforce Tower. 나는 아직 세일즈포스를 사용할 나이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와 영원히 상관없는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아, 되게 높다'라는 인상만 받았다. 관계자들이 와서 보면 감회가 남다르려나. 그런데 빌딩이 완전히 구름에 갇혀서 꼭대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한 20층 정도보다 위에 있는 오피스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고, 그냥 구름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비구름 덕분에 진정한 공중 정원이 돼 버린 꼴이다. Salesforce Tower를 지나쳐서 직진하니까 Pier 14가 나왔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상하게도 바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비도 내리고 거리 전체에 마약과 소변 냄새가 가득해서 그런가. ㅋ 그런데 이튿날은 비가 워낙 줄기차게 내린 덕분에 첫날 내가 맡았던 이.상.한. 냄새도 한결 물러난 듯했다. Pier 14에서는 Bay Bridge 몸통 전체가 다 보였다. 비구름이 많이 껴서 비록 화창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운치 있는 잿빛 Bay Bridge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워낙 수증기(?)가 가득해서 다리의 원래 색깔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날 나는 Bay Bridge를 직접 (우버를 타고) 건너게 된다.
슬슬 몸도 으슬으슬 추워지고, 아침에 토스트 한 조각만 먹어서인지 미친듯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위치한 Ferry Building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동행하기로 한 분을 기다리면서 마켓에 어떤 점포들이 있는지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식욕이라는 원초적인 감각에 굴복하고 결국 중국식 에그롤 하나를 사 먹었다. 점포 안 자리는 다 찬 데다가 오미크론에 감염될 가능성도 고려해서 그냥 에그롤만 집어들고 Ferry Building main entrance를 나와서 조금 옆으로 비켜 선 채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허기 진 느낌을 지우지 못해서 또 참지 못하고 main entrance 오른편의 치즈케이크 가게에서 블랙베리 치즈케이크 미니 사이즈를 하나 더 사 먹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 동물이구나, 라고 느꼈다. ㅋ 치즈케이크를 다 먹고 나서도 동행(앞으로 C라고 부르겠다)을 10분 정도 더 기다렸다.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미리 문자를 주셔서 나도 천천히 오시라고 답장했다. 에그롤과 치즈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내 모습을 첫인상으로 각인시키기는 나도 싫었기 때문에. ㅋㅋ 어쨌든, 동행과 만나서 Ferry Building 안을 본격적으로 한 바퀴 돈 다음에 어떤 가게에서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줄이 없었던 Boulettes Larder + Boulibar 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 하나랑 스튜 하나를 주문했다. 결제는 C가 하고 내가 나중에 카카오페이로 결제액의 반을 보내 주기로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C와 미처 하지 못한 통성명을 했는데, 그분은 작년 9월에 특전사로 제대하시고 2학기를 군휴학하셨다가 그대로 한국에서 나태하게 지내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12월 초부터 캘리포니아를 여행하게 됐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침 이모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거주하셔서 숙박비는 자연스레 해결됐고, 12월 초부터 대략 한 달 동안은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를 예정이고 그 후에는 산호세에 갔다가 LA로 이동했다가 다시 자기가 좋아하는 NBA 농구팀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일단 제대하셨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고, 숙박비를 안 낸다는 점이 두 번째로 부러웠으며, 자그마치 두 달 반 동안이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음이 세 번째로 부러웠다. 물론, 여행이야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만, 올해 1학기를 휴학하고 해외 여행을 떠나기에는 뭔가 가슴이 찔렸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칼복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미래는 아직 어떻게 선로를 바꿔 나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C도 자기가 지금 이렇게 훌쩍 여행을 떠나리라고는 몰랐다고 했다. 지금 내가 기적처럼 카투사에 합격해 8월에 입대하고 2024년 2월에 제대해 3월에 칼복학해서 2026년 2월에 졸업하겠다고 계획을 세워 봤자, 첫째날의 불운 같은 일들이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씩 태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체득해 보자. 아, 그리고 Boulettes Larder + Boulibar에서 물값 $6를 제외하고 - 두 병을 시켰기 때문에 - 총 $30 정도가 나왔는데, 맛은 별로였다 - 특히 내가 시킨 스튜가. 누군가 Ferry Building을 관광한다면 줄이 길더라도 Hog Island Oyster를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본격적으로 Coit Tower로 길을 나서기 전에 날이 점점 추워져서 몸도 녹일겸 Ferry Building 안의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사 가기로 했다. C에게 나름의 재밌는 에피소드랍시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블루보틀이 입접할 줄 몰라서 도쿄에서 라떼를 사 먹고는 그 컵을 그대로 가져 와다'라고 얘기했는데, 재밌게 받아들이셨을지는 의문이다. ;; 하지만 여전히 그 라떼 컵은 내 침대 두 번째 서랍에 찌그러지지도 않은 채 보관하고 있다. 블루보틀... 은 명성만 높지 맛은 평범한 듯하다. 입맛은 어디까지나 모두의 주관에 의해 가장 좌우되는 법이니 반문은 받지 않겠다. 여하튼 블루보틀 라떼를 각자 손에 쥐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면서 Coit Tower까지 걸어갔다. Coit Tower에 도달하려면 해변가를 따라 쭉 걷다가 Battery Street과 Sansome Street을 건너 Greenwich Steps라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Greenwich Steps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사실 우리가 힘들게 올라갔던 그 계단들이 Greenwich Steps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방금 지도를 보고 알아냈을 정도로 그냥 애플맵만 따라서 이동했지만. 사실 그 동네(North Beach)가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건물들도 앤틱하게 빨간 벽도로 지어져 있는 등 뭔가 부촌 같았다. 세계 어느 도시든 부촌은...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듯하다. 그런데 뭐, 부촌이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North Beach 특유의 안정된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Greenwihc Steps는 가파르기는 했지만, 운동도 됐고, 그 경로 양옆으로 늘어선 집들의 정원에 이국적인 식물들이 잔뜩 자라는 데다가 향긋한 꽃들까지 피어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게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Bay Bridge가 포함된 바다 전경이 이국적인 식물들의 잎들 사이로 보였다. 마음껏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길이 워낙 가파르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번 대충 찍기만 했다.
그렇게 힘겹게 Coit Tower에 도착했다. Coit Tower 1층에는 미국 서부의 역사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미국 역사에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그냥 '안 봤다.' ㅋㅋㅋㅋ 내게는 대륙의 역사가 훨씬 흥미롭다. 특히 작년 1학기에 맛보기(...) 수업으로 수강했던 철학과의 <중세서양철학> 전공 수업은 정말 재밌었다. 로마 제국 후기부터 비잔틴 제국, 십자군 전쟁, 대항해 시대의 시작 등등. 하지만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미국 역사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꼭대기의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성인 1인당 $10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전망대도 안 올라가 보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비싸지만 그냥 티켓을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옛날에 엘리베이터 걸이라는 직업이 존재했듯 Coit Tower 엘리베이터도 어떤 할아버지께서 수동으로 작동하셨는데, 올라가는 길에 '이 엘리베이터는 엄청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며 어쩌구 저쩌구'라고 알려 주셨다. 재밌게 들었지만, 나의 하찮은 뇌 용량에 담기에는 별 내용 아니었다. Coit Tower 꼭대기에서 보는 샌프란시스코 전경은 정말 멋졌다. $10 내고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아크릴판으로 창문들이 다 가려 있어서 완전히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풍경을 충분히 담고 내려왔으니 나는 만족한다. 날이 흐려서 골든게이트 교의 빨간색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형태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외에도 내가 C에게 자꾸만 '교도소 섬'이라고 호칭했던 Alcatraz 섬이나 Transamerica building, Twin Peaks가 눈에 들어왔다. 국내 관광객들에게 '꼭 방문해야 하는' 관광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듯하지만, 나는 Coit Tower에 가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한국에서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일을 하면서 옥죄었던 내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C와 나는 다시 Fisherman's Wharf 쪽으로 향했다. C는 사실 지난 2주 반 동안 왠만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을 다 관광했기 때문에 모든 선택권을 내게 양도해 줬다. 문자로도 말씀드렸지만, 동행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사실 Fishermans' Wharf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바다사자 무리를 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C가 "그러면 그냥 Fisherman's Wharf 안에 있는 Pier 39로 가죠"라고 코스를 추천해 줬다. 샌프란시스코는 지형 자체가 평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언덕 동네이므로 Coit Tower에서 바닷가까지 '내려'가는 것도 일이었다. 만약 겨울에 눈까지 왔다면 샌프란시스코에는 하루 평균 1000여건의 교통 사고가 났으리라고 100% 장담한다. 어쨌든 어린 애들 놀이 동산 같은 분위기의 Fisherman's Wharf는 그냥 '내가 여기 다녀갔다'의 표식으로 사진만 한 장 찍고 Pier 39에서 꽤 오랫동안 바다사자들을 관람했다. 걔네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많은 인간들이 그들을 관광의 목적하에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바다사자들은 두 개의 데크에 몸을 맞대며 쉬고 있었는데, 아마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겨울 바람의 추위를 그나마 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한 마리는 세 번째 데크에 자기 혼자 벌러덩 누워 있었다. 왕따를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왕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다사자는 확실히 바다코끼리보다 귀엽다. 참, 바다사자를 실물로 보는 것도 생애 처음일지도. 어렸을 때 샌디에고에 위치한 씨월드에 가서 범고래 Shamu의 쇼도 보고 했다는데 - 내가 Shamu를 무척 좋아했고, 거기서 산 비눗방울 세트를 소중히 간직했다는 사실은 분명 기억난다 - 거기서 과연 바다사자도 봤을지는 의문이다.
바다사자를 보고 나니 슬슬 날이 저물기 시작해서 안 그래도 추운데 더 추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에 경량 패딩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유니클로 경량 패딩까지 두 겹으로 입었는데도 추웠다. 그래서 원래는 Ghiradelli Square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그냥 버스 타고 가기로 했다. 첫째날 공항에서 구입했던 Clippers Card로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C가 알려 준 덕분에 마음 놓고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Ghiradelli Square는 뭐랄까...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나는 워낙에 초콜릿을 좋아하기 때문에 -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초콜릿'을 꼽고는 했다. 음식이 아니라고 누구가 불평하면 답을 조금 비틀어 '쇼콜라 퐁당'이라고 알려 준다 - 꽤 많은 기대를 하고 갔는데, 1층 카페에서 주문한 Decadent dark chocolate 음료와 브라우니가 참 별로였다. 솔직히 음료까지는 봐 줄 수 있었는데, 브라우니가 정말 극강의 단 맛을 자랑했다. 덕분에 입맛도 버리고, 저녁 생각도 말끔히 들어가 버렸다. 어쩌면 내가 저녁 식사비를 아끼게 해 준 '소중한' 메뉴일지도? ㅋ 어쨌든 그래서 기라델리 초콜릿 패키지를 사갈까 생각했는데, 카페에서 주문한 음식을 맛보고는 그냥 그 생각을 고이 접어 어디론가 날려 버렸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Powell/Hyde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Powell Street Station으로 복귀했다. 케이블카는 워낙에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이라서 당연히 기대도 많이 했는데 - 그러니까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보게 될 바깥 풍경을 - 이미 해도 다 지고 날이 상당히 추워서 창문에 김이 서려 버린 바람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ㅋ 게다가 사람들을 아주 구겨넣다시피 해서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 덕분에 반대편 창밖 풍경 보기란 바늘구멍에 실 뚫기보다 어려웠다. 아, 그리고 탑승하기 전에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는데, 내가 Ghiradelli Square로 버스를 타고 오는 바람에 Clippers card에 잔액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았다. 케이블카는 한 번 타는 데 성인 1인당 $8여서 그냥 현금을 내고 탔는데, 케이블카 아저씨가 C를 붙잡고 오랫동안 뭔가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 있지 않은가. 직감적으로 아, 내가 돈을 한 장 안 냈나 보구나 라고 생각해서 땅으로 다시 내려가서 $1 지폐 한 장 더 내고 C와 같이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ㅋㅋ + 케이블카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갔다면 아마 무척 고생했을 것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언덕이 굽이굽이 이어져서 아마 제주도 구릉 세 개를 올라가는 데 소요되는 운동량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Powell Street Station에 도착해서 나와 C는 헤어졌고, 나는 너무 추워서 차마 숙소까지 걸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고, 다음 날 우버를 부르기 전에 시험이라도 해 볼겸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편안한 내일 아침을 보내기 위해 미리 짐을 싸 두고 - 쌀 것도 없었다, 애초에 짐 정리하기 싫어서 최소한의 짐만 캐리어에서 꺼내 놨다 - 머라이어 캐리의 Apple TV Special "Mariah Carey: The Magic Continues"를 다 보고 잠들었다. 캐리 여사는 아주 화려하고 기장이 아주 아주 긴 돌체&가바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는데, 나중에 <Vogue>에서 진행한 캐리 인터뷰 영상을 시청하다가 그 드레스가 무려 30kg나 나갔다는 진귀한 사실도 알게 됐다. ㅋㅋ 어쨌든, 정리하자면 만족스럽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
3. 2021년 12월 30일 - 3일차
1. Buena Vista Park 산책.
2. Zazie에서 아침 식사.
3. Golden Gate Park 산책.
4. 안녕, 샌프란시스코.
전날 에어비앤비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데이비스로 향하는 우버를 11시에 예약해 뒀기 때문에 아침에는 최대한 민첩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렇다고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전을 날려 버리기 싫어서 이튿날 밤에 나름 브런치 맛집도 알아 놓고, 동선도 미리 파악한 다음에 잤다. 아침 7시에 길을 나섰는데, 세상에 한국에서 해 간 해외 로밍이 갑자기 말을 안 듣는 문제가 발생해서 애플맵을 켤 수가 없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데이터 로밍' 기능을 꺼 놔서 안 됐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 어제 AT&T에서 받은 미국 유심칩으로 갈아 끼운 다음 '무제한 데이터의 여유'를 만끽하며 브런치 맛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내가 방문해 보고 싶었던 Buena Vista Park가 있어서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루트를 택했다. 공원에는 둘째날 Alamo Square에서 본 나무들보다 훨씬 웅장하고 거대하고 오래 된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숲 냄새도 좋았고, 무엇보다 Buena Vista Park 자체가 하나의 낮은 산이나 다름 없어서 Coit Tower에서 잿빛으로만 봤던 골든게이트 교를 선명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사실 이 공원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멋진 공원이었고, 등산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엄연한 산책도 충분히 즐겼다. 나, 나름 야외 활동이 포함된 여행에 만족하는 스타일인가 보다. ㅋ Buena Vista Park에서 나와서 다시 주택가로 접어들었는데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맡았던 그 이.상.한. 냄새를 또 맡았다. 그런데 이 동네는 분명 조용한 주택가고, 노숙자도 없는데 어떻게 똑같은 냄새가 날 수 있지? 나는 Civic center와 Cole Valley의 거리를 비교한 끝에 깨달았다. 이 냄새는 분명 마리와나 냄새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 냄새는 나중에 데이비스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술, 담배, 마약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 자기 몸에도 안 좋은 일을 상습적으로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가엽기만 하다. 어쨌든, Zazie에 다다라서 안에서 먹고 갈 것이라고 말하니까 코로나 백신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점원이 요구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셋째 날에는 서류 없이 크로스백만 매고 나왔는데,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보다가 UCD Health-e-messaging에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해당 웹페이지를 보여 줬다. 하긴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QR을 찍고 다녀야 하는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Zazie에서는 그 유명한 던지네스 크랩과 아보카도가 같이 올려진 La Mer 에그 베네딕트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정말 여유로운 아침이었고, 그제서야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그 베네딕트 자체는 맛있었지만, 그렇다고 $19만큼의 질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감자는 너무 짰다. 하지만 오전 내내 산책만 하다가 데이비스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든든하게 먹어 둬야 했다. 그래서 접시를 깔끔하게 비웠다.
Zazie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조금 더 걸어서 Golden Gate Park 입구에 도착했다. Golden Gate Park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도 더 넓어서 하루만에 다 돌아다니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원래는 중앙에 위치한 de Young Museum과 Japanese Tea Garden도 방문하고 싶었는데, 시간상 Conservatory of Flowers만 둘러보고 나오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분명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공원 티가 났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아침이라 그런지 대부분 조깅을 하고 있었다. 이른 시각부터 공원에 찾아온 관광객은 나뿐인 듯했다. Conservatory of Flowers 파빌리온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그냥 그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셋째날은 아침부터 맑고 따뜻한 날씨였기 때문에 공원을 산책하기에 딱 적당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하루 날 잡아서 하루종일 Golden Gate Park에만 상주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의 자연을 만끽하고 나는 데이비스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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