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yssey11 누군가에 대한 단상_1 버스 정류장을 몇 걸음 앞두고 나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실제 프루스트가 장기간 묵었던 역사적인 호텔 방에서 오랜만에 늦잠을 청하고 난 뒤 일어나자마자 거닐었던 카부르의 해변은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겠구나. 비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 두 개를 컨시어지에게 맡기고 카부르 시내와 발벡 대성당의 모델인 디브-수-메흐의 노트르담을 구경했다. 모처럼 꿈에 그리던 '그' 그랜드 호텔에 왔는데 프루스트처럼 우아하게 1층 식당에서 조식을 즐기고 싶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싼 나머지 아침 식사 자체를 포기했다. 애당초 늦게 일어난 탓에 식사 시간이 애매해진 것이 가장 컸다. 성당을 다녀오는 길에 카부르의 메인 스트리트에 자리한 파티세리 뒤퐁.. 2022. 8. 4. 누군가에 대한 단상_0 최근 들어 모든 글에는 적절한 서문이 필요함을 부쩍 절감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누군가에 대한 단상_1"로 달았다가 금세 맨 뒤 숫자를 "0"으로 고쳤다. 아직 미필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기억에 배정된 뇌 용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 같아 내가 경험한 사건 및 일상 중 조금이라도 인상적이다 싶으면 모조리 글로 기록하려 노력 중이다. 그러나 텍스트 변환 작업만 시작했다 하면 당시 머릿속에 담겨 있던 의식의 단편들을 논문에 각주 달듯 샅샅이 적는 바람에 쓰는 행위 자체가 번거로워졌다. 원체 방대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가벼운 의도로 짧게 끝내려 했던 글마저 일 주일 넘게 살을 붙이고 있다. 이런 진행 속도와 나약한 마음으로는 내가 정말로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마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순행적 구.. 2022. 7. 31. 대서양을 건너 이번 여름의 프랑스(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럽) 여행은 기대하고 또 고대했던 명실상부 군입대 전의 최대 이벤트였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캘리포니아에 체류 중이던 때부터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수정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그 안타까움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 기행문을 쓰는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기꺼이 프랑스 이곳저곳을 같이 돌아다녀준 동행에게 면전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내가 새로운 글을 블로그에 게재했다고 개인 SNS에 홍보하면 가끔씩 과수원에 들러 주는 것 같다. 즉 혼자인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나의 속마음을 언젠가는 친구도 알게 되겠지. 그렇지만 친구도 남모르게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누군가를 의식해 내 안의 응어리를 그대로 .. 2022. 7. 1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