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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11

짧은 수기_4 나 나름 프랑스에서 잘 먹고 다녔다. 허구한 날 "돈 없다"를 일종의 구호처럼 되풀이했지만, 그래서 내 옆의 베스트 드라이버 겸 동행자였던 H의 귀에 딱지가 앉았겠지만. 근사한 곳에 가서 더 여유있게 소비한 사람은 H. 그럼에도 아마 총 지출량은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확 저질러 버리고는 한동안은 또 지갑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들렀던 파티세리들? 구글 맵에 "사랑해요~"라며 저장해 둔 제과 맛집들에서는 망설임 없이 초록빛 피를 흘려 줬다. 하고많은 디저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스토레의 바바오럼. 럼주가 듬뿍 들어 있어서 문자 그대로 취.하.는.줄. 2022. 12. 23.
짧은 수기_3 JFK에서, 미국에서의 마지막 식사. 뉴저지의 당고모가 비행 시각이 애매하다면서 당일에 점심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공항 안의 스타벅스에서 매우 '아메리칸'한 특별 메뉴를 먹고 싶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때 당고모 말씀을 들을 걸 그랬다. JFK의 유럽행 터미널 안쪽에는 스타벅스는 커녕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 없었다! 반 년 동안의 半강제 자취 생활 덕에 다 같이 캐리어를 끄는 콧대 높은 인파 속에서 적당한 목적지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것에는 도가 텄었다만. 결국 마땅한 곳을 못 찾아 에어 프랑스 카운터 바로 앞의 매대에서 조그만 피자를 먹었다. 그래도 나름 명분 있게 '맨해튼'이라는 이름의 피자를 시켰다. 내 영혼의 반쪽 - 덤벼라, 방사능! - 오~이 오챠와 함께. 클래식 박창현이다. 2022. 12. 23.
짧은 수기_2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신경전의 연속. 사냥꾼과 사냥감. 그러나 먹이사슬의 아랫단에 속하는 이에게는 하늘이라는 도피처가 존재한다. 포식자는 인간의 집에 서식하며 그들의 애정에 마비된 나머지 본연의 감각을 어슴푸레나마 기억하며 엉거주춤 자세를 잡는다. 아무리 대단한 동체 시력의 소유자라 해도 저 정도 거리에서는 절대 새를 상대할 수 없음을 저 혼종 샴 고양이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Meow! ... 끔찍했던 데이비스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밝혀준 고양이 - 내가 뭐라고 불렀더라? 2022. 12. 23.
짧은 수기_1 밤새 비가 내려서 땅은 축축하고 공기 중에도 습기가 가득한 아침이었다. 심지어 에이버앤비를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가랑비까지 내렸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초면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인증샷은 꼭 남겨야겠다며 우산은 왼쪽 어깨와 고개 사이에 가까스로 끼워서 한 손에는 검색 맛집 특제 토스트를 들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억척 박창현 선생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달까나. 2022.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