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dyssey

짧은 수기_6

by 도미니크앙셀 분당점 2023. 1. 29.

프루스트를 동경해 마지않는 나로서 지난 번 여행에서 자꾸만 그의 흔적을 좇으려 했다. 일리에-콩브레라는 별볼일 없는, 그저 루아르 지방과 일 드 프랑스 사이의 광활한 평야를 지루하게 달리다 보면 종종 지나치는 작은 마을 중 하나를 시간을 쪼개 방문한 것도 프루스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루아르 강변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고성들에 발도장을 찍고 오후 늦게 도착한 일리에-콩브레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 꽤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에 짐을 풀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저녁거리를 찾아 광장을 서성이고, 성당을 반 바퀴 둘러 그 외관을 감상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베르사유로 향하기 전 무료였지만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푸짐했던 아침 식사를 아직 이슬이 공기 중의 습기에 침투돼 불투명해진 아침 햇살을 방울방울 투영하며 맺힌 드넓은 초록 뒷뜰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즐겼을 뿐이다. 시골 마을은 언뜻 평화로워 보였지만, 우리는 섬뜩한 시선 속에서 간신히 저녁을 떼워야 했다. 한때 비본 냇가가 졸졸 흐르는 소리 위에 미사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덮혀 이상적인 전원의 분위기를 자아냈을 도심에는 텅 빈 공간에 갑작스레 나타난 두 명의 동양인을 별미처럼 주시하는 중동 계열 남자들뿐이었고, 더군다나 오후 다섯 시가 채 되기도 전이었는데 문을 연 가게는 케밥집밖에 없었다. 프루스트의 영감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밥만 먹었다. 아, 아무리 일리에가 일리에-콩브레로 개명됐다 해도 속세의 풍화는 못 피하는구나. 결국 이곳도 고령화, 저출산, 지역 불균형, 노동 인구 급감, 그리고 세계화의 직격탄을 맞았구나. 이민자들은 기껏 가난으로부터 도망쳐 또 다른 가난에 이르렀구나. 마치 머나먼 동양의 끝에서 우리가 올 수 있던 것처럼, 그 새까만 눈동자들도 한때는 반짝이는 꿈에 가슴 설레하며 이곳 땅에 발을 디뎠겠지. 보리수차에 살짝 적신 마들렌 조각 대신 나는 코카콜라가 새겨진 테이블에 앉아 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역시 문학은 허상이구나.

'Odyss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험프리스를 떠나며.  (3) 2024.03.01
짧은 수기_7  (1) 2023.06.04
짧은 수기_5  (0) 2023.01.14
짧은 수기_4  (0) 2022.12.23
짧은 수기_3  (0) 2022.12.23